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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자녀의 상간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와 관련하여
작성자 : 박현상 변호사
1. 민법상 이혼사유로서 간통과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폐지 결정의 관계
(1) 간통은 가장 중요하고 빈번한 민법상 이혼 사유입니다(민법 제840조 제1호). 우리나라는 간통에 대한 책임을 기존에는 형사책임을 중심으로 다루어왔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이제 민사적 책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헌법재판소 2015. 2. 26. 선고 2009헌바17, 205 등). 간통죄 폐지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은 간통에 대한 책임으로서 형사책임이 부당하다는 취지에 불과하고 혼인과 가정생활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간통행위에 대해서 엄중한 민사책임을 물어야 된다고 설시하고 있습니다.
(2) 구체적으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라고 합니다) 다수의견은 ‘간통죄 규정이 일률적으로 모든 간통행위자 및 상간자를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한 것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국가형벌권의 과잉행사로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지만(결정문 1면), 반대의견은 ‘현행 민법상의 제도나 재판실무에 비추어보면, 간통죄를 폐지할 경우 수많은 가족공동체가 파괴되고 가정 내 약자와 어린 자녀들의 인권과 복리가 침해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결정문 2면).
(3) 이런 반대의견의 우려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민법의 엄격한 적용을 통한 보호를 설시했고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구체적으로 “실질적 위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간통죄를 폐지하는 한편, 간통행위로 인한 가족의 해체라는 사태를 맞아 기존의 민법상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 내지 재산분할청구, 자녀의 양육, 면접, 교섭에 관한 재판실무관행을 개선하고, 이에 더해 배우자와 자녀의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제도를 새로 강구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라고 설시하였습니다(결정문 20면).
2.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자녀의 정신적 고통
(1) 이혼 가정의 아이가 부모의 이혼으로 우울해 하고, 특히 청소년기에는 반사회적 행동, 학업문제 등이 빈번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나 논문에서 보여지는 사실입니다. 이렇듯 이혼으로 인하여 아이에게 극심한 정신적 고통이 발생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2) 그렇다면 상간자의 민사책임은 기존에 간통죄가 있었던 시기와 다른 방향으로 판단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상간자가 부담하여야 할 위자료의 증액뿐만 아니라 상간자의 자녀들에 대한 불법행위 책임도 마땅히 인정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자녀들이 평생 상처로 남는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3. 대법원의 태도 - 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1899 판결에 대한 분석
가. 개설
(1) 지난 20년간 여러 소송에서 자녀의 상간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제기되었습니다. 이는 앞서 자세히 살펴본 바와 같이 이혼으로 인한 어린 자녀들의 정신적 충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신적 충격에 대한 치료 비용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 법원은 위 2004다1899판결을 근거로 자녀의 손해배상을 부정하였습니다.
(2)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은 ① 상간자의 손해배상 책임의 구조를 오해하고 있고, ②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의 판결에 불과합니다. 우선 2004다1899판결의 경위를 살펴보면, 1심은 자녀들의 청구에 대하여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였는데(서울중앙지방법원 2002. 10. 22. 선고 2002가단4168 판결), 2심에서는 부정하였으며(서울중앙지방법원 2003. 11. 13. 선고 2002나58852 판결), 3심에서는 원심의 판단을 인용하며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나. 2004다1899판결의 논리
2004다1899판결의 핵심적인 내용은 “배우자 있는 부녀와 간통행위를 하고, 이로 인하여 그 부녀가 배우자와 별거하거나 이혼하는 등으로 혼인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경우 그 부녀와 간통행위를 한 제3자(상간자)는 그 부녀의 배우자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따라서 그로 인하여 그 부녀의 배우자가 입은 정신상의 고통을 위자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라도 간통 행위를 한 부녀 자체가 그 자녀에 대하여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고 할 수는 없고, 또한 간통행위를 한 제3자(상간자) 역시 해의(해의)를 가지고 부녀의 그 자녀에 대한 양육이나 보호 내지 교양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자녀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고 할 수는 없다.”는 부분입니다.
다. 간통행위를 한 배우자의 책임에 대한 근거
① 간통행위를 한 배우자의 간통행위를 하지 않은 배우자에 대한 책임의 내용 - 법정책임
우리 민법은 배우자의 간통행위는 재판상 이혼사유로 규정하고(민법 제840조 제1호), 간통행위를 한 사람은 배우자에게 이에 따른 재산상 및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843조, 제806조). 즉 배우자의 간통행위에 대하여 불법행위(민법 제750조)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고의 과실 등에 대한 고려 없이 특수한 책임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구조하에 대법원은 상간자의 책임은 불법행위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즉 간통한 배우자는 법정책임을 지고(민법 제843조, 제806조), 상간자는 불법행위책임을 지는 부진정연대책임의 구조입니다.
② 간통행위를 한 배우자의 자녀에 대한 책임의 내용
또한, 사법부는 간통으로 인한 이혼으로 법원이 자(子)의 양육에 관한 사항과 자에 대한 면접교섭권의 제한ㆍ배제 등을 결정할 때 부정한 행위를 한 배우자에게 일정한 불이익을 주고 있는데, 여러 이혼 관련 판례를 통하여 그런 내용이 확인됩니다. 즉 간통행위를 한 배우자에 대하여 친권에 대한 제한을 일정 부분 가하고 있고, 양육비에 대한 부담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③ 소결 - 간통행위를 한 배우자의 법정책임과 상간자의 불법행위책임의 병존
그렇다면 2004다1899판결이 설시하고 있는 내용 중 “간통 행위를 한 부녀 자체가 그 자녀에 대하여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고 할 수는 없고, 또한 간통행위를 한 제3자(상간자) 역시 해의(해의)를 가지고 부녀의 그 자녀에 대한 양육이나 보호 내지 교양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자녀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고 할 수는 없다.”는 부분은 달리 해석되어야 합니다. 즉 간통행위를 한 배우자의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상간자의 불법행위는 성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하 항을 바꾸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라. 2004다1899판결의 법리오해 1 - 간통행위를 한 배우자의 친권 제한의 제재와 상간자의 불법행위 책임의 병존
(1)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간통행위를 한 배우자는 간통행위로 인하여 친권제한이라는 제재를 받고, 아이들이 어린 경우에는 양육비 지급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간자에게도 이와 동일한 수준의 대등한 책임이 인정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상간자의 책임은 가족 구성원이 아니기에 민법의 일반규정인 불법행위책임(민법 750조)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2) 따라서 2004다1899판결에서 ‘간통행위를 한 배우자에게 불법행위책임이 없으므로 상간자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설시한 부분은 간통행위를 한 배우자의 책임구조에 대한 민법의 규정을 오해한 것입니다.
마. 2004다1899판결의 법리오해 2 - 불법행위가 성립하기 위한 특별한 사정에 대한 법리오해
2004다1899판결은 ‘제3자(상간자) 역시 해의(해의)를 가지고 부녀의 그 자녀에 대한 양육이나 보호 내지 교양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그 자녀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한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녀의 권리에 대한 법적 구조를 오해한 것입니다.
어린 자녀(미성년자 자녀)는 친권 및 부양청구권에 근거한 자녀의 부모 모두와 함께 살 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녀의 부모 모두와 함께 살 권리가 침해되었느냐 여부가 자녀의 상간자에 대한 청구의 핵심 고려 대상입니다.
상간자의 간통행위로 인하여 부부의 이혼이 성립하고(민법 제840조 1호), 이혼으로 인하여 자녀들의 부모 모두와 함께 살 권리가 침해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간자가 배우자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면 이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고, 자녀까지 있었다면 간통행위를 한 배우자가 자녀들과 같이 살 수 없다는 사실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소극적 인식만으로도 불법행위가 충분히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다1899판결은 별도의 불법행위에 대한 특별한 사정을 요구한 것이니 이는 부당한 판결입니다. 또한 2004다1899판결은 개별적인 보호 내지 교양에 대한 침해를 중점적으로 기재한 것인데, 간통행위로 이혼이 성립되고, 그 결과 자녀에 대한 일반적인 보호 내지 교양이 침해되는 것은 간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 2004다1899판결의 법리오해 3 - 간통죄 폐지 전의 판례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의 판례는 간통죄로 실형을 살던 관행을 고려하여 민사책임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간통죄가 폐지되었고, 앞서 살펴본 간통죄 폐지에 이후에 민사책임을 더욱 강력히 요구하는 헌재의 설시를 고려한다면 2004다1899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유지 될 수 없습니다.
4. 맺으면서 - 아동 보호를 위한 법원의 적극적 판단의 필요성
(1)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혼으로 발생하는 청소년기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이혼 사유가 간통인 경우에는 그 상처는 배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는 아직도 혼인과 가족생활의 경건함에 대하여서는 헌법원리로 보장하고 있고, 사회 여러 제도를 통해 혼인과 가족생활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녀과 관련하여 아동복지법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2) 요즈음은 출산률도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며 우리나라의 미래가 암울한 전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사법부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위한 전향적인 판결을 할 때가 되었다고 보입니다. 판결은 사회구성원의 생각이 바뀌면 그에 따라 변화하여야 합니다. 다만 사법부의 특성으로 그 변화가 늦는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3)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에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간통죄가 폐지되었기에 간통으로 인한 가정파괴의 사실상의 위협은 더욱 증대하였습니다. 가정 파괴의 위협은 증가하였지만 국가의 헌법상 원칙인 가정에 대한 보호 노력은 동일해야 합니다. 헌재가 설시한 것처럼 민법에 의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보호를 위하여 상간자의 부정행위에 대한 법원의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그 변화의 핵심은 자녀의 상간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의 인정입니다.
(4) 한편 간통행위가 발생하는 것은 배우자 상간자 둘의 의사 합치입니다. 따라서 상간자에게 자녀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이러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진다면, 상간자도 기혼자를 유혹하지 않을 것이고, 설령 기혼자가 상간자를 유혹하였더라도 상간자가 그런 유혹을 거절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간통으로 인한 이혼도 적어질 것이고,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는 아이들도 적어질 것입니다.
(5) 혼인과 가정생활의 보호를 위하여 상간자의 자녀에 대한 책임의 근거를 만들어 주는 것이 간통죄를 폐지한 헌재 결정의 취지이고, 법원의 역할이며,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