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칼럼] 변론과정에서 지켜본 피의자 입건기준의 혼란성
작성자 : 박상융 변호사
절도범으로 몰렸다. 수사관의 심증에 의해 절도범으로 의심되었다. 택배기사가 아파트에 휴대폰 이어폰을 배달한 후 주인에게 전달되기 전 없어졌다는 것이다. 옆집 사람이 의심되었다. 그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서로부터 출석, 소환 통고가 왔다.
조사 신분이 피의자이다.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는다. 내가 왜 피의자이냐 판단 근거가 뭐냐고 따졌다. 수사관 자신이 볼 때 범인으로 의심되어 피의자로 입건한다는 것이다.
발달장애 여부, 가족관계, 병역관계, 학력관계, 재산정도부터 세세히 질문한다. 부인하자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겠냐고 질문한다.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영문도 모른 채 거짓말탐지기 조사에 응하겠다고 했다.
지방청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했다. 절도 관련 질문내용보다 범죄와 무관한 질문이 더 많다. 그러면서 생리적 반응점수 판단결과 거짓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자 다시 수사관으로부터 추가조사 요청이 왔다.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현장에 나가 확인을 했다.
수사관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부분이 더 있었다. 엘리베이터 외에 다른 방화문 계단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다른 층의 사람과의 원한 관계도 있을 수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수사를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러면서 지방청에 수사에 대한 이의신청을 했다. 피의자로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수사관이 자의적으로 피의자로 입건하면 되는지에 대한 이의신청을 했다.
피의자는 범죄혐의자이고 조서를 받고 지문날인도 한다. 형사입건도 된다. 입건되면 수사자료표에 등재가 된다. 입건 후 혐의가 없다고 판단되면 판단을 하여야 한다. 그것도 검찰처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고소장이 접수되었다고 피고소인은 피의자신문을 받는다. 고소내용에 대해 범죄혐의가 되는지 검토하지도 않는다. 회사 대표이사가 고소, 고발되는 경우도 있다. 고소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고 단지 회사 대표이사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소인 신분이라고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는다. 그렇게 되면 회사 대표이사는 경찰 출석조사로 회사업무 관련해 아무 일도 못 한다.
고발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사관에 따라 피고발인을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조사를 요청한다. 고발내용이 과연 범죄가 성립하는지 검토하는 것이 우선인데도 말이다.
피고소인, 피고발인 출석조사 전에 고발내용 관련 자술서를 받아본 후 조사를 시작하면 어떨까. 자술서 내용이 불명확할 시 그때 조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피조사자 신분도 참고인, 피혐의자, 피내사자, 피조사자 등으로 혐의 정도에 따라 정하면 어떨까.
한번 형사입건, 지문날인, 전산입력되면 여러 가지로 신분상 불이익이 많다. 우리나라와 같이 고소, 고발사건의 약 10% 정도만 기소의견 또는 기소되는 나라에서는 피조사자의 신분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필자는 평택서장 재직시 미군부대 헌병이 영외 순찰중 평택시민 동행 관련 조사를 할 때
미군측에서 피조사자인 미군헌병의 출석 신분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을 보았다. 무조건 피의자가 아닌 피조사자, 피혐의자, 피내사자 등의 표현을 사용해달라고 했다.
압수수색 영장의 범죄혐의사실을 보면 피의자로 기재되는 경우가 많다. 조사도 하지 않고 무조건 피의자이다. 피의자로 입건되어야 영장이 발부되기 때문이란다.
이제는 이런 수사편의주의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